과달키비르 강변의 일몰 풍경은 꽤나 아름다웠다. 나는 마리아루이사 공원 쪽에서 출발하여 황금의 탑(Torre del Oro)과 나오 빅토리아호(La nao Victoria Sevilla), 마에스트란사 투우장(Plaza de Toros de la Real Maestranza)을 지나 이사벨 2세 다리까지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는데, 해가 질 수록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과 다리의 조명들이 분위기를 한껏 운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과달키비르강 Río Guadalquiv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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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키비르 강(강의 우측이 트리아나, 좌측이 세비야 중심지구다.) |
세비야의 과달키비르 강은 스페인 남부를 가로지르는 강으로 스페인에서 다섯 번째로 긴 강이다. '과달키비르'는 아랍어 'الوادي الكبير(al-wadi al-kabir)'에서 온 명칭으로 '커다란 강'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강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중요한 교역로의 역할을 해 왔으며, 세비야는 이 강을 통해 중세와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 제국의 주요 항구도시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과달키비르 강을 중심으로 강의 서쪽은 트리아나(Triana) 지역, 동쪽은 세비야 센트로와 산타크루스 지구가 포함된 세비야의 중심부다. 트리아나 지역은 플라멩코의 발상지이자 도자기 공예로 잘 알려진 곳이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세비야 중심부를 벗어나 트리아나의 도자기 공방이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왕 다리를 건너 트리아나를 방문했다면 꼭 찾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트리아나 시장(Mercado de Triana)'이다. 어느 도시나 시장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이유는 현지인들의 평범한 일상과 생생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로컬 음식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트리아나 시장 안에는 작은 타파스 바와 식당들이 즐비해, 신선한 재료로 즉석에서 만든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황금의 탑 Torre del O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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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탑(Torre del Oro) |
마리아 루이스 공원에서 나와 과달키비르 강의 동쪽을 따라 이사벨 2세 다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굉장히 이국적인 건물이 하나 보인다. '황금의 탑(Torre del Oro)'이라는 썩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이 건축물은 세비야 항구를 방어하기 위해 13세기 알모하드 왕조 시대에 지은 무어 양식의 망루라고 한다. 12각형에 3층 구조로 이뤄진 이 독특한 형태의 탑은 주로 군사요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신대륙에서 가져온 보물을 보관하던 장소로도 이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현재는 해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탑의 꼭대기에는 전망대도 있으니 한번 방문해 봐도 좋을 것이다. 구름이 없는 날이라면 과달키비르 강변의 일몰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일 듯하다. 입장료는 무료이나 원하는 사람에 한해 기부금 3유로를 내도록 하고 있다.
나오 빅토리아 Nao Vic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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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 빅토리아(Nao Victoria) 호 |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해적왕 루피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빈티지한 배가 한 척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나오 빅토리아호다. 나오 빅토리아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배다. 과달키비르 강변에 서 있는 이 배는 나오 빅토리아호를 실물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이끄는 5척의 배가 세계일주를 위해 세비야 항구를 떠난다. 원정 중 필리핀에서 마젤란이 사망하자,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Juan Sebastián Elcano)가 기수를 이어받는다. 1522년, 항해를 떠났던 5척의 배 중 단 한 척의 배만이 세계일주를 마치고 세비야로 귀환하는데, 그것이 바로 나오 빅토리아호다.
나오 빅토리아호는 방문객들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는데,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놀라게 된다. 이런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할 생각을 하다니. 사람들의 모험심과 무모함은 대단하다. 그래도 그런 도전들이 있었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겠지.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런 도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들도 생겨났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인류의 역사는 제로섬 게임의 연속이다.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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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 |
나오 빅토리아호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찻길 건너편에 재미난 모양을 한 건축물이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웃집 토토로가 떠올라 사진에 낙서를 해 보았다.😆
귀여운 외양과 달리 이 건물은 투우장이었다. 왕립 마에스트란스 투우장. 동그란 모양을 보고 투우장이겠거니 하고 추측은 했었다. 18세기 중반에 세워진 이 투우장은 12,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내부에는 투우사의 의상이나 황소의 뿔, 회화 등을 전시해 놓은 소규모 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은 둘러봐도 좋을 것이다.
투우는 스페인의 전통문화이지만 동물 학대 문제로 여러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2010년부터 투우 경기를 금지하였다고 하는데, 이곳 세비야에서는 지금도 투우 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문화는 존중하지만, 나는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미 소들의 귀여운 면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 소고기도 먹지 않는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이사벨 2세 다리 Puente de Isabel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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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2세 다리(Puente de Isabel II) |
강 위에 놓인 다리들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글동글한 링들이 박혀 있는 저 고풍스러운 다리는 세비야에서 가장 오래된 철제 다리인 '이사벨 2세 다리'다. 1852년 완공된 이 다리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카루젤 다리(Pont du Carrousel)를 모델로, 프랑스 건축가 구스타브 스테인(Gustave Stein)과 페르디난드 베넷(Ferdinand Bennet)이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트리아나 시장이 나온다. 과달키비르 강에서는 각종 크루즈 투어도 즐길 수 있다. 유람선 투어에서 프라이빗한 보트 트립까지 여러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옵션이 있으니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시도해 보길 바란다. 세비야를 즐기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마무리
세비야에서의 일몰은 과달키비르 강변에서 즐겨보길 추천한다. 강변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세비야의 명소를 만날 수 있다. 이슬람의 향기가 물씬 나는 '황금의 탑'에서 세비야의 대항해시대를 그려보게 하는 '나오 빅토리아호', 세월이 켜켜이 묻어나는 '이사벨 2세 다리'까지. 어느 도시든 중심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현지인들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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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주요 명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