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의 스페인 남부여행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남겨 보려고 한다. 내가 8월에 여행한 스페인 남부의 도시는 세비야와 말라가,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그라나다였다. 참고로 나는 4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경내 전경. 멀리 그라나다 시내가 보인다. |
무계획 스페인 남부여행
비효율적인 여정(feat. 산티아고 순례길)
내가 스페인 남부를 여행한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 800km를 완주한 후였다. 산티아고에서 먼저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이동했다. 포르투와 리스본에서 2주 정도 여행을 하고 포르투갈 해안길을 하루 걷다 그만두고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돌아갔다. 거기서 무시아(Muxia)까지 걸었다. 무시아에서 버스로 피스테라(Fisterra)까지 들른 후 또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산티아고에서 3번이나 체류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산티아고에 정이 담뿍 들어버렸다. 산티아고에서 며칠을 쉬다가 마드리드와 톨레도를 여행한 후 세비야로 떠났다. 이것이 스페인 남부 여행의 시작이었다.
나는 원래 계획 없이 여행하는 인간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움직이진 않는 편인데, 이번엔 어떻게 그렇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7월에 걸었던 메세타 |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난 후 내가 계획한 것은 체류 기간과 인아웃 도시뿐이었다. 프랑스 파리로 들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나오는 3개월짜리 항공권을 들고 일단 프랑스로 떠났다. 순례길 이후의 여행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순례길을 걸으며 도중에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으면 여러 날을 머무르기도 하고 순례길 코스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잠시 여행도 다녀오고 하면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순례길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친구가 포르투로 여행을 오기로 하면서 계획이 변경됐다. 친구가 포르투에 도착하는 날짜에 맞춰 순례길을 완주하기 위해 당초 계획과는 달리 매일매일을 경주마처럼 걸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계획 없이 여행하는 이유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여차저차하다 보니 가장 뜨거운 8월에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게 되었다.
8월, 스페인 남부 여행의 장단점
지금부터 하는 내가 하는 얘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계절도 여행하는 스타일도 제각각이니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경험이, 또 다른 이에게는 최고의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8월, 스페인 남부 여행의 장점
한여름 스페인 남부 여행의 장점은... 해가 길다는 것? 스페인 남부의 여름 해는 거의 밤 10시까지 지지 않는다. 해가 긴 것은 여행자에게는 큰 장점임에는 틀림없다. 특히나 여자 혼자 여행일 경우 해가 지고 난 뒤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조금은 불안한 일이다. 스페인 레스토랑이나 바의 키친은 보통 저녁 8시 반 즈음 오픈한다. 해가 길면 밤문화를 즐기기에도 훨씬 유리하다. 흠, 너무 논리가 빈약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냥 이쯤 해 두겠다.
8월, 스페인 남부 여행의 단점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40도가 넘는 태국의 습한 여름과 한증막 같이 건조한 호주의 여름도 몇 해를 겪은 경험이 있어 나름 무더위에 최적화된 유연한 바이오리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만한 더위
그런데 8월 스페인 남부의 뜨거움이란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중에서도 내륙인 세비야와 그라나다의 한낮 더위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것이었다. 아니, 노약자에게는 정말 치명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온 도시가 펄펄 끓는다. 숨이 턱턱 막힌다.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은 뜨거운 열기를 잔뜩 품었다. 이곳에서 시에스타는 생명보존을 위한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귀한 낮시간을 태양을 피해 실내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은 나처럼 걸어 다니기 좋아하는 여행자에게는 매우 아쉬운 점이다.
⛅맑은 날임에도 희뿌연 하늘
프리힐리아나의 희뿌연 하늘 |
프리힐리아나와 네르하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코발트블루’가 아니었다. 맑은 날임에도 하늘이 희뿌연 색이었다. 맑은 날임에도 희뿌옇다는 말에 어폐가 좀 있지만, 말인즉슨 구름 없이 개인 날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색이 새파랗지 않다는 것이다.
네르하 '유럽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El Salón beach. 이날 역시 구름 한 점 없이 하얀 하늘이었다. |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면서 종종 그런 하늘을 보게 되었다. 원인을 찾아보니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예상대로 태양광의 영향도 있었다. 광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빛의 산란에 의해 하늘이 희뿌옇게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여름철 사하라사막의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에 실려온 미세한 모래와 먼지 입자들도 하늘의 청명함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거기에 여름철엔 정체된 고기압 하에 대기가 잘 순환되지 않아 먼지나 오염물질이 머물러 있기가 쉽단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하는 인간으로서 좀 아쉬웠던 부분이다. 하늘이 파랗지 않으니 확실히 사진도 덜 예쁘다.
🍊오렌지 없는 오렌지 나무
마무리
쓰다보니 한여름 스페인 남부 여행의 단점만 줄줄이 나열한 것 같은데, 여름만의 매력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각자의 취향에 달렸을 뿐. 바다를 좋아하고 해양스포츠를 즐긴다면 말라가나 네르하와 같은 해변도시를 찾으면 된다. 해안가의 도시는 확실히 내륙보다는 덜 뜨거웠다.
바다의 윤슬과 백사장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더욱 빛난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편협한 이 글은 그냥 참고만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