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마누엘 건축양식의 정수

사실 포르투갈 여행은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큰 기대 없이 계획하게 된 것이었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포르투갈이란 나라에 매료되어 버렸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도 물론 매력이 넘치는 곳이지만, 좀 더 정적인 분위기의 포르투갈과 이곳의 사람들이 나에게는 더 편안했다.  

리스본 여행을 하기로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곳 중 하나인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 벨렝 타워(Torre de Belém)와 더불어 500년의 역사를 품은 유적지이자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의 업적을 기리고자 설립된 곳이라고 한다. 


제로니무스-수도원-전경
제로니무스 수도원 전경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역사

설립 배경

제로니니무스 수도원은 유럽의 해양 강국으로 자리잡은 당시 포르투갈의 국가적 위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마누엘 1세가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성공적인 인도 항로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1501년 건축을 시작해 무려 100년에 걸쳐 세워졌다고 한다. 그만큼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건축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그중 포르투갈 특유의 건축 양식인 마누엘 양식(Manuelino)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마누엘 양식의 특징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벨렝 타워와 함께 포르투갈 특유의 건축 양식인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마누엘 양식은 앞서 벨렝 타워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되 해양 탐험 시대의 상징물들을 건물 곳곳에 조각해 넣은 건축 스타일이다. 실제로 수도원의 기둥이나 문 등에는 닻이나 밧줄, 혹은 산호와 해초, 조개 등의 바다 생물 문양이 정교하게 부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983년 벨렝 타워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제로니무스-수도원-회랑에서-바라본-중정의-모습
수도원 회랑에서 바라본 중정의 모습


제로니무스 수도원 이용 정보

이용 시간 및 입장료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개방되며,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무이니 미리 확인한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 30부터 오후 6시까지로, 입장 마감은 오후 5시 30분이다. 

입장료는 성인 12유로이며, 학생이나 노인은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무료다. 리스보아 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벨렝 타워와 마찬가지로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참고로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리스보아카드-포스팅-링크


관람 시 유의사항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입장하면 부속 성당인 산타마리아 성당(Igreja de Santa Maria de Belém)까지 관람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볼거리들이 많아 둘러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수도원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면 관람시간을 좀 여유 있게 안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수도원 내부에서는 플래시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플래시 기능을 꺼놓도록 유의해야 한다.  

제로니무스-수도원-산타마리아-성당-내부-전경
산타마리아 성당 내부 전경


볼거리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부속 성당인 산타마리아 성당 내부에는 마누엘 1세와 그의 아들 주앙 3세 부부,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 등이 안장되어 있다. 실내에 있는 석관의 모습이 낯설고도 이국적이었다. '불안의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묘도 이곳에 있다. 

성당-내부의-왕실묘와-수도원-회랑-아케이드에-있는-페르난두-페소아의-묘비
성당 내부의 왕실묘(상)와 수도원 회랑 아케이드에 있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묘비(하)

산타마리아 성당에 들어서자 고딕양식의 높은 천장과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정교하고 화려한 실내 장식과 제단화는 건축물 자체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유명한 대성당을 수도 없이 봐서 무감각해진 탓인지, 개인적으로는 성당보다 수도원 건축물이 훨씬 더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베이지 색감의 모노톤 건물 자체도 맘에 들었지만, 구석구석 섬세하게 새겨진 조각들은 인간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해양 왕국으로 호령하던 당시 포르투갈의 위세가 이 건축물을 통해 느껴졌다. 


제로니무스-수도원의-회랑
제로니무스 수도원 회랑

수도원의 회랑을 걸을 때는 뭐랄까 조금은 몽환적인 기분이었다. 아치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려 놓은 그림자까지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종교 건축물을 포함해 이런 위대한 건축물들을 볼 때면, 인간이 신의 손을 잠시 빌려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종교와 권력이란 것이 인간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이라 생각하니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종교와 권력에 의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참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결론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상징하는 유적지이자 포르투갈의 마누엘 건축 양식의 정수를 담아낸 화려하면서도 품위 있는 건축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수도원의 회랑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회랑에서 바라본 중정의 모습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내적평화가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회랑이 가장 좋았던 건축물은 이곳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처음인 것 같다. 아마도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해 내부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사람들로 가득한 회랑이었다면 이런 기억으로 남지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