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의 집(Casa Fernando Pessoa)에서 만난 페소아의 자아들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Casa Fernando Pessoa)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가 1920년부터 15년간 실제로 살았던 건물을 개조하여 1993년 박물관으로 개관한 곳이다. 페르난도 페소아는 '불안의 책'이나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등의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층이 꽤 있는 작가다. 

페소아는 작가나 시인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철학자, 번역가, 광고업자, 정치평론가에서 점성가까지, 마치 그가 남긴 수많은 이명(異名, heteronym)들처럼 다양한 직함을 가진 사람이다. 페소아가 썼던 필명들은 75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는 글을 통해 내면의 자아들을 각각의 모습으로 살아내게 한 듯하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페소아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시는 인간 심연에 내재한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난해하지만 어렵지 않은 어휘들로 풀어냈다. 흠... 난해하지만 어렵지 않다는 말이 어폐가 있으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달리 설명을 못하겠다. 어차피 같은 글이라도 독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다를 테니, 해석은 읽는 이의 자유다. 

페소아의 묘사와 비유는 현학적이지 않고 미사여구가 없으며 직관적이다. 그의 글에는 깊은 고뇌와 사유, 철학이 담겨 있었다. 이명을 빌려 쓴 글들이라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더 진솔하게 써 내려갈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페르난두-페소아의-집-건물-전경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 건물 전경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 기본정보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Casa Fernando Pessoa)은 포르투갈 국민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실제로 거주했던 집을 복원하여 그의 일상적인 삶과 문학적 여정을 엿볼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조성해 놓은 곳이다.  

위치와 운영 시간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은 리스본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캄포 드 우리크(Campo de Ourique)라는 지역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혼잡한 관광지에서 벗어나 한적하게 골목골목 산책하기에 좋은 동네다. 
운영시간은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로 매주 월요일휴관이다. 내부에 있는 도서관은 월요일과 주말에는 열지 않는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

리스본 중심가에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까지는 25번이나 28번 트램을 타고 Saraiva Carvalho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정류장에서 페소아의 집까지는 약 270m 거리로 도보 5분 이내면 도착한다. 

Saraiva-Carvalho-정류장에서-Casa-Fernando-Pessoa까지-가는-길-지도

나는 Estrela 정류장에서 내려 에스트렐라 대성당(Basilica of Estrela)에서 미사를 본 후 걸어갔다. 에스트렐라 성당에서 페소아의 집까지는 약 500미터 거리로 성인 걸음으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참고로 에스트렐라 성당 미사는 일요일 오전 10시, 정오(12시), 오후 7시에 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입장료와 예약 방법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5유로이며, 12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학생(13~25세, 국제학생증 제시)은 2.5유로, 65세 이상 노인(신분증 제시)은 4.3유로에 입장할 수 있다. 티켓은 온라인과 현장에서 모두 구매가 가능하다. 

페르난두-페소아의-집-예매처-배너

리스보아 카드를 소지한 경우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리스보아 카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한 포스팅을 참고하면 된다. 
리스보아카드-포스팅-링크



페르난두 페소아의 삶과 문학 

페르난두-페소아의-집-3층-전시실-전경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 3층 전시실 전경

페르난두 페소아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Luís de Camões)를 잇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포르투갈의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작가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생애 

페르난두 페소아는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나, 그의 나이 여덟 살에 가족을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18세가 되던 해인 1905년 그는 리스본으로 돌아와 리스본 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지만, 일 년도 못 되어 자퇴한다. 이후 번역, 회계 등의 일을 하면서 작가 활동을 병행한다. 그가 1915년 창간한 '오르페우(Orpheu)'라는 문학잡지는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페소아는 시와 산문뿐 아니라 철학과 비평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였는데, 그가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게 된 것은 수많은 '이명(異名, heteronym)'을 활용한 그의 독특하고도 실험적인 작품 스타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각각의 인물들이 고유의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작품을 통해 구현해 내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나의 자아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 

페소아는 1935년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데, 사인은 알코중독으로 인한 간질환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의 글들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 발견된 27,543매나 되는 유고(遺稿)로 인해서다. 그의 대표작인 '불안의 책' 역시 그의 사후 47년 만에 출간된 책이다. 정작 페소아 자신은 그의 글을 통해 이렇게 많은 이들이 위로와 영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다. 

'불안의 책'

페소아의 작품 중 우리에게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앞서 언급한 '불안의 책(Livro do Desassossego)'일 것이다. '불안의 책'은 그가 1913년부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틈틈이 기록한 글들을 모아 놓은 자전적 에세이다. 불안의 책의 저자인 '베르나르드 소아르스'는 페소아의 수많은 이명 중 실제의 그와 가장 닮아 있는 인격체였다고 한다. 회계사무원으로 홀로 살아가던 소아르스의 '삶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그가 느끼는 내면의 불안, 공허, 외로움 등에 대한 단상을 481편의 글로 보여준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의 역사와 관람정보

건물의 역사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은 페소아가 1920년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그가 마지막 15년을 보냈던 아파트 건물을 1993년 박물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박물관을 조성하는 과정에 여러 차례의 리모델링을 거쳤는데, 가능한 원형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박물관 1층에 재현된 페소아의 서재와 침실은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들로 채워져 있어, '불안의 책'에 삽입된 메모들을 끄적이고 있는 페소아의 모습이 그려졌다.  

관람정보

페르난두-페소아의-집-층별-안내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은 지하를 포함하면 5층 건물인데 입구 및 리셉션이 있는 그라운드 플로어에는 기념품점과 서점, 강당이 있다. 지하에는 화장실과 로커가 있고, 전시관은 1,2,3층으로 3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관람하면 된다. 

페소아에 대한 소개와 별자리 운세

3층에는 페소아가 이명으로 썼던 기록들과 각각의 이명들에 대한 소개와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각 인물들의 별자리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페소아의 시를 오디오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영어 버전으로 들을 수 있다. 

발걸음을 조금 옮기면 사방에 거울이 조각조각 붙어 있는 곳이 나온다. 그 가운데 서서 거울에 반사되는 나를 보며 페소아 내면의 수많은 페르소나들을 간접 체험해 보는 공간이다. 


Game of Disquiet

2층에는 'Game of Disquiet'이라는 이름의 재미있는 전시 공간이 하나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아크릴 패널을 세워 만든 미로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패널에는 '불안의 책'에 나오는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패널을 골라 문장을 읽어본 후 본인이 원하는 위치에 다시 꽂아두면 된다. '불안의 책'이 페소아의 사후, 타인에 의해 분류되고 편집된 것이기에 그 순서는 사실 의미가 없다. 읽는 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차피 481편의 글이 각각 독립적인 단상들이라 독자의 생각대로 어디에 끼워 넣어도 '불안의 책'은 '불안의 책'인 것이다. 

2층에 있는 개인 도서관(Private Library)에는 페소아가 소장했던 1,200여 권의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곳은 관리 문제로 일반인의 출입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페소아가-생을-마감하며-남긴-문장
페소아가 생을 마감하기 전 남긴 문장

1층에는 페소아가 생활했던 서재와 침실을 재현해 놓았는데, 그가 직접 사용했던 물건들과 사진,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침실 옆방에는 페소아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인 "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이라는 글귀와 함께 그가 적은 기록들로 벽과 천장을 빼곡히 채워 놓은 공간이 있었다.  

천장과-벽을-가득-채운-페소아의-기록들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페소아의 기록들

그라운드 플로어에 있는 강당에서는 페소아의 작품을 낭독하는 프로그램이나, 그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 토론하는 세미나 등이 열린다고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어느 공간 하나 허투루 두지 않고 세심하게 꾸며 놓았다. 전시 공간 곳곳을 둘러보며 '아, 이곳은 정말 페소아에 진심인 사람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소아를 몰랐던 사람이더라도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아마도 바로 '불안의 책'을 읽을 결심을 하게 될 듯하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 주변 볼거리들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이 있는 캄포 드 우리크 지역은 25번과 28번 트램의 종착역으로 주요 관광지가 모여있는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한적한 주택가다. 붐비지 않고 조용해서 골목 산책하기에 좋은 동네다. 

캄포 드 우리크 시장(Mercado de Campo de Ourique)

페소아의 집에서 도보 약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이다. 1934년에 문을 연 시장으로 주로 신선한 농산물을 팔고 있으며, 푸드 코트도 들어서 있다. 

📍캄포 드 우리크 시장 위치(구글맵)


에스트렐라 대성당(Basilica of Estrela)


에스트렐라 대성당 역시 페소아의 집에서 약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10분 내로 걸어서 갈 수 있다. 에스트렐라 대성당은 18세기 후반에 설립된 바로크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일요일 오전 10시와 정오(12시), 오후 7시에 미사가 있다. 나는 정오 미사를 드렸는데,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에스트렐라-대성당-정오-미사
에스트렐라 대성당 정오 미사


📍에스트렐라 대성당 위치(구글맵)


에스트렐라 공원(Jardim da Estrela)

에스트렐라 대성당 바로 건너편에 있는 에스트렐라 공원은 1852년에 조성된 공원이라고 한다. 페소아의 집을 관람한 후에 에스트렐라 공원에 들러 잠시 쉬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양한 수종들이 많아서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에스트렐라-공원
에스트렐라 공원

📍에스트렐라 공원 위치(구글맵)


결론

'페르난두 페소아의 집'은 개인적으로 리스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중 하나다. 페소아의 수많은 자아들의 궤적을 엿보며 '인간 페소아'에 대한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겼다. 



페소아의-시-어쩌면-오늘이-내-인생의-마지막-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