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포르투갈 해안길' 하루 걷고 그만둔 이야기(Porto~Labruge)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해안길' 루트의 시작점인 포르투(Porto)에서 라브루주(Labruge)까지 약 24km를 걸어 라브루주 공립알베르게에서 하루를 숙박했던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포르투 도루강에 놓인 아하비다 다리(Ponte da Arrábida)

포르투갈에 온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 800km를 걷고 난 직후였다. 포르투와 리스본을 둘러본 후 스페인 남부 여행을 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묵시아(Muxia)까지 걷지 못한 것이 계속해서 맘에 걸렸다. 

극단적인 P 성향을 타고나 늘 즉흥적인 여행을 하는 나는, 이번에도 느닷없는 계획을 세워버렸다. 포르투갈 해안길을 걸어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올라가서 묵시아까지 걷는 계획을 말이다. 포르투갈 해안길의 총거리는 약 270km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당시 나는 프랑스길에서 얻은 족저근막염으로 뒤꿈치를 땅에 디디는 것조차 괴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태생이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하는 인간인지라 일단 또 저질러 보았다. 


포르투갈 해안길 기본정보

포르투갈 해안길과 내륙길

포르투갈길은 내륙길과 해안길로 나뉜다. 내륙길리스본에서 시작해서 말 그대로 내륙의 산과 마을을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로 총거리는 약 613km다. 해안길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포르투에서 대서양 해변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루트로 약 270km를 걸어야 한다. 하루에 20km 정도를 걷는다 생각하면 내륙길은 약 한 달, 해안길은 2주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 

포르투갈 해안길 루트

포르투갈 해안길은 포르투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약 270km 길이의 여정이다. 초반에는 대서양을 따라 걷다가 포르투에서 약 110km 지점에 있는 '카미냐(Caminha)'라는 마을에서 페리를 타고 미뉴(Minho)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면 아구아르다(A Guarda)라는 마을에 도착하는데, 이곳부터가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이다. 여기서 약 60km를 더 걸으면 포르투갈 내륙길과 합쳐지는 지점인 레돈델라(Redondela)가 나온다. 레돈델라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내륙길을 따라간다.  


포르투~라브루주 루트

나무데크 위의 순례길

대서양 해변을 따라 걷는 포르투에서 라브루주까지의 여정은, 포르투 도심을 벗어난 이후로는 내내 해안가에 깔린 나무데크 위를 걷는다. 가끔 도로변을 걷기도 하는데, 코스의 대부분이 나무데크 위를 걷는 루트다. 당연히 오르막이나 내리막은 없고 매우 평이한 코스다. 대신 나무가 거의 없어 한 여름엔 땡볕 아래를 걸어야 하니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다. 수영이나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걷다가 멈춰서 바다에 잠시 몸을 담그고 즐기다 가도 좋을 것이다. 

대서양 해변은 파도가 좋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7월 말에 이 길을 걸었는데,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 걷기엔 오히려 좋았지만, 역시 바다는 하늘이 화창해야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흐린 날의 바다는 조금, 조금 많이 황량했다. 

주요 경유지

포르투갈-해안길-루트-맵
포르투갈 해안길 루트 [출처] Gronze

포르투 도심에서 도루(Douro)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대서양으로 이어지는데, 비치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줄곧 나무데크 위를 걷게 된다. 포르투 여행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지나 봤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도루강에서 이어지는 대서양 주요 해변의 정보 및 풍경은 아래 링크한 포스팅을 참고하시라. 

포르투-자전거-라이딩-포스팅-링크

포르투갈 해안길은 대서양의 휴양지를 가로질러 걷는 루트라 주변에 펜시한 레스토랑이나 바(Bar)가 많았다. 힘들면 잠시 들러 쉴 곳이 많다는 점은 좋았지만, 휴양지인 만큼 물가는 프랑스길보다는 높은 편이었다. 


하루만 걷고 그만둔 이유 

포르투갈 해안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하루 만에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하지 마시라. 성향상의 문제이므로.

나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프랑스길의 피레네와 온갖 산과 들, 숲길을 걸을 때는, 그런 풍경 속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 순간 감사하고 행복했었다. 족저근막염으로 발은 아파도 그 공간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바다는 그만큼 나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호주와 태국에 거주한 적이 있어 트로피컬한 해변에 익숙해서인지 몰라도, 야자수 하나 없는 대서양의 해변은-날씨 탓도 있었겠지만-왠지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 걷는 내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포르투갈-해변길의-끝도-없이-이어지는-나무데크길
포르투갈 해변길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나무데크길

단조로운 풍경이 반복되니 걷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괜스레 발의 통증에만 더 신경이 쓰였다. 아마 조금 더 걸었다면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가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근데 아마도 이때는 프랑스길이 그리웠던 것 같다. 


라브루주 공립 알베르게

라브루주-공립-알베르게
라브루주 공립 알베르게(Albergue São Tiago de Labruge)

라브루주에는 알베르게가 공립 알베르게인 '라브루즈 산티아고 알베르게(Albergue São Tiago de Labruge)' 하나밖에 없다. 이 알베르게는 순례길 루트에서 거의 85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해변길에서 마을 쪽으로 꽤 걸어 들어가야 한다.  

📍라브루주 공립 알베르게 위치(구글맵)

지금 Camino ninja앱을 확인해 보니 15유로라고 나와 있는데, 내가 갔을 당시(2023년 7월)에는 기부제였다. 재밌는 것이 리셉션에 있던 여자분이 기부제라고 설명을 해 주면서 지금 바로 본인에게 돈을 내라고 하셨다. 이런 '기부'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멋쩍은 헛웃음이 나왔다.😓

1층 리셉션 한쪽에 주방이라 부르기는 무색한 취사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길목인 데다 공간도 너무 협소하여 그곳에서 개인 음식을 해 먹는 것은 민폐일 것 같았다. 

도리토리는 2층에 있었는데, 벙커 침대와 싱글, 더블베드가 섞여 있었다. 침대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고, 위의 사진에서처럼 방 입구의 복도에도 벙커 침대가 있었다.😂   

순례객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유독 피곤했던 날이라 일찍 침대에 누웠는데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려는 듯 마당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결론

포르투갈 해안길이 정말 좋았다는 리뷰를 많이 봤었다. 하루를 걷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지만, 사람이나 장소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에게 맞고 편안한 곳이 다른 이게도 그렇다는 법은 없다. 

처음 지나는 길인데도 마음이 편한 곳이 있는 반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곳이 있다. 물론 컨디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완전히 새로울 수도 있다. 어쨌든 이때 나에게 포르투갈 해안길은 하루면 충분했던 것 같다. 

나는 다음날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고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묵시아까지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