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해안길' 루트의 시작점인 포르투(Porto)에서 라브루즈(Labruge)까지 약 24km를 걸어 라브루즈 공립알베르게에서 하루를 숙박했던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포르투 도루강에 놓인 아하비다 다리(Ponte da Arrábida) |
포르투갈에 온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 800km를 걷고 난 직후였다. 포르투와 리스본을 둘러본 후 스페인 남부 여행을 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묵시아(Muxia)까지 걷지 못한 것이 계속해서 맘에 걸렸다.
극단적인 P 성향을 타고나 늘 즉흥적인 여행을 하는 나는, 이번에도 느닷없는 계획을 세워버렸다. 포르투갈 해안길을 걸어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서 그곳에서 묵시아까지 걷는 계획을 말이다. 참고로, 포르투갈 해안길의 총거리는 약 270km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당시 나는 프랑스길에서 얻은 족저근막염으로 뒤꿈치를 땅에 디디는 것조차 괴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태생이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하는 인간인지라 일단 또 저질러 보았다.
포르투갈 해안길 기본정보
포르투갈 해안길과 내륙길
포르투갈 해안길 루트
포르투~라브루즈 루트
나무데크 위의 순례길
대서양 해변은 파도가 좋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
주요 경유지
하루만 걷고 그만둔 이유
포르투갈 해안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하루 만에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고하지 마시라. 성향상의 문제이므로.
나는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프랑스길의 피레네, 온갖 산과 들, 숲길을 걸을 땐 그런 풍경 속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 순간 감사하고 행복했었다. 족저근막염의 고통도 잊을 만큼 그 모든 시간이 축복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바다는 그만큼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내가 호주와 태국에 거주한 적이 있어 트로피컬한 해변에 익숙해서인지 몰라도, 야자수 하나 없는 대서양의 해변은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왠지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 걷는 내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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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해변길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나무데크길 |
라브루즈 공립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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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루즈 공립 알베르게(Albergue São Tiago de Labruge) |
공립 알베르게인 '라브루즈 산티아고 알베르게(Albergue São Tiago de Labruge)'는 라브루즈 마을의 유일한 알베르게다. 이 알베르게는 순례길 루트에서 거의 85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해변길에서 마을 안쪽으로 꽤 걸어 들어가야 한다.
지금 Camino ninja앱을 확인해 보니 15유로라고 나와 있는데, 내가 갔을 당시(2023년 7월)에는 기부제였다. 재밌는 것이 리셉션에 있던 여자분이 기부제라고 설명을 해 주면서 지금 바로 본인에게 돈을 내라고 하셨다. 이런 '기부'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멋쩍은 헛웃음이 나왔다.😓
결론
포르투갈 해안길이 정말 좋았다는 리뷰를 많이 봤었다. 하루를 걷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지만, 사람이나 장소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에게 맞고 편안한 곳이 다른 이게도 그럴거란 법은 없다.
처음 지나는 길인데도 마음이 편한 곳이 있는 반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곳이 있다. 물론 컨디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완전히 새로울 수도 있다. 어쨌든 이때 나에게 포르투갈 해안길은 하루면 충분했던 것 같다.
나는 다음날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묵시아까지 걸었다.